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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베리아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 허상문
저 자 허상문
판 형 A5
출간일 2004.07.16
페이지수 302
ISBN 895664053X
가 격 9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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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교수의 기행에세이 『시베리아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가 도서출판 모아드림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필자가 지난 2002년 여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이어지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시베리아 횡단 여행을 한 기록이다. 이 기록 중 일부는 필자가 이미 1994년과 1997년에 블라디스보스토크와 모스크바를 각각 여행한 경험과 1998년 구 소련에서 독립되어 나온 카자흐스탄을 여행한 경험이 일부 첨가된 부분도 있다. 우리들의 눈앞에서 사라진 마르크스 레닌주의라는 '유령'의 그림자를 찾아 나서는 길, 흡사 그것은 우리들의 학창시절 어디선가 어렵사리 구한 마르크스와 레닌, 혹은 루카치의 불온스런(?) 이념 서적을 가슴에 품고 하숙집에 몰래 들어와 어둠 속에서 밤새워 읽던 암울하던 시절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느낌이다.
시베리아 횡단 여행은 길고도 힘든 아득한 길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의 길이는 무려 9,288 킬로미터인데,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서 6박 7일 동안 꼬박 계속해서 달리면 마침내 모스크바에 이르게 된다. 물론 여행을 목적으로 할 경우, 중간 중간의 크고 작은 도시에 내려 며칠씩을 보낸 후에 다시 열차로 달리기를 거듭하지만, 어쨌든 시베리아 횡단 여행은 이래저래 대장정의 길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그리고 상트 페테르부르크까지의 길고 긴 여행을 통하여 무너진 구 소련의 역사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실체와 오늘날 러시아의 인간과 삶을 확인하고 점검한다.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인해 이름도 알 수 없는 시베리아의 오지에 내던져졌다가 이제 벌써 3세까지 뿌리를 내려 우수한 민족으로 자리한 조선족들,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정차하는 작은 시골 역에서 간이 행상을 하는 러시아 할머니들의 고단한 삶의 모습들, 자신들의 조국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을 하다가 결국 눈물을 떨구고 마는 러시아의 인텔리겐지아들, 모스크바의 아라바트 거리에서 자본의 물결에 흔들리던 러시아의 젊은이들, 그리고 좌절된 혁명을 탄식하는 듯 핀란드 역 앞에 우두커니 서있던 레닌의 동상… 여행동안 내내 저자는 이들과 같이 마주앉아 함께 호흡하고 대화를 나누며 '아! 이제 이 지상에서 마르크스 레닌주의는 정말 사라졌구나' 하고 탄식하며 주저앉았다가, '아니다, 마르크스 레닌주의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언젠가 다시 살아 돌아올 것이다'는 생각을 하며 떨쳐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시베리아 횡단 여행에는 이데올로기와 역사에 대한 명상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환상적인 아름다움과 황홀한 낭만이, 그리고 뜨거운 러시아 사람들의 입김이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닫지 않은 눈보라치는 자작나무 숲속을 [닥터 지바고]의 라라와 함께 달려 가는 황홀한 사랑의 꿈을 꾸는가 하면, 일자리를 찾아 어딘가로 열차를 타고 떠나는 러시아 친구와 함께 밤새워 보드카를 통음하며 이 고단하고 힘겨운 삶을 타령하기도 했고, 열차 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저 미지의 대륙 어딘가에서 혁명가들과 함께 그동안 꿈꾸어 오던 천년 왕국을 건설하는 환상에 사로잡히기도 하는 것이다. 마린스키 발레단의 아름다운 몸짓은 나를 희열에 떨게 했으며, 도스토에프스키의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와 함께 이 암울한 현대적 삶의 어둠과 절망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우리들의 모진 삶을 이어가게 하는 생명줄과 같은 것이다. 때로 끝없는 무위와 몽환에 사로잡히기도 했지만, 눈을 뜨면 또 한 끼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치열한 현실이 거기에 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의한 긴긴 러시아 여행은 아득하고 힘든 우리들의 삶의 도정과 같은 것이다. 거기에는 희망과 절망이, 슬픔과 기쁨이, 그리고 만남과 이별이 있는 것이다.